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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노동열사 희생자 추모페이지

현대자동차 노조 민주화에 헌신

서영호

기일 1993년 07월 01일
당시 31세

약력

1986년 11월 21일 현대자동차 입사
1989년 소위원 가입
1990년 4·28 연대투쟁시 선봉대 활동
1991년 소위원 활동, 노민추(노조민주화추진사업회) 사업부 3대 집행부 정책연구부장, 교양지 ‘단결과 전진’ 편집위원
1992년 1월 21일 경찰침투 대비 바리케이트 설치 중 차량사고로 해성병원 입원
1993년 7월 1일 의식불명인 상태로 투병생활 중 운명

동지의 삶

동지는 1986년 11월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여 악덕 자본가와 그들을 비호 지지하는 독재자들의 야만적인 횡포성에 맞서 계급의식을 키웠다. 1988년 소속 선거구 대의원 활동을 하면서 노동조합 민주화에 앞장서 왔다. 1990년 4·28연대 투쟁 시 선봉대로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진격하는 경찰병력에 맞서 현대자동차 정문과 구정문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경찰과 맞서 싸우는 치열한 가두투쟁에 항상 선봉에 섰다. 1991년 12월말 성과분배 정의실현 상여금 투쟁을 벌이고 있던 현대자동차 노동자를 정권과 현대재벌은 물리력을 이용하여 짓누르려 하였고 1992년 1월 19일 공권력 투입설이 여론을 통하여 선전되면서 긴장감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동지는 차량 바리케이트를 치다가 소속 조합원이 운전하던 브레이크와 전조등이 작동하지 않는 불량 차량과 충돌하게 되었다. 동지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불명인 상태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93년 7월 1일 끝내 운명했다.

묘역

양산 솥발산공원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