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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노동열사 희생자 추모페이지

철도가 민주노조로 바뀐 것만으로도 일생의 보람

서선원

기일 2013년 10월 19일
당시 54세

약력

1980년 철도청 입사
1993년 청량리기관차지부 지부장
전기협 사무처장, 의장 역임
1994년 전지협 공동파업 전개, 이후 구속, 해고
2004년 청량리기관차 복직
2013년 9월 건강악화로 입원, 담도암 말기 판정

동지의 삶

동지는 1980년 철도청에 입사하여 1988년 기관사들의 7.26 파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파업의 결과로 '구속자 가족 후원회'가 구성되고, 전기협이 대중적인 구심점이 됐다. 전기협은 자연발생적 투쟁이었던 7.26 투쟁의 실패를 딛고 일상적으로 간부수련회, 실태조사, 수차례의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부당전출자 원직복직 투쟁,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을 벌여 나가며 조직적인 활동을 강화했다. 기관사를 중심으로 한 노조민주화 세력의 대중적 성장과 함께 동지는 1993년 청량리기관차 지부장에 당선됐다. 전기협 사무처장에 이어 의장을 맡게 된다. 1994년 6월 전기협은 서울지하철노조-부산지하철노조와 함께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전지협) 공동파업 투쟁의 주축이 됐다. 전지협 공동파업은 공공부문 노조 민주화와 공공운수 총파업의 주요한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전기협은 어용노조 하에서 8시간 노동제 쟁취 등 노동조건 개선과 민주노조 건설의 초석이 된다. 이후 동지는 전지협 공동파업 투쟁으로 구속됐고, 1996년 홍성교도소에서 석방됐다. 하지만 출소 뒤 2년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고통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10년 해고생황을 어렵게 견뎌냈다. 2001년 민주노조를 쟁취한 후 2004년 청량리 기관사로 복직했다. 그러나 이미 동지의 건강은 정상적 업무가 어려운 상태였다. 복직 2개월 만에 꿈에도 그리던 철도 현장을 따니야 했다. "철도가 민주노조로 바뀐 것만으로도 일생의 보람"이라는 퇴직 인사를 남겼다. 이후 생업과 건강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2013년 9월 중순 건강악화로 입원 후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그해 10월 19일 유명을 달리했다. 투쟁과정에서 너무나 힘든 개인사로 고통받으며 민주노조가 공공철도를 열망했던 동지의 헌신과 희생정신이 면면히 계승됐기에 철도노조의 오늘이 있다.

묘역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