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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노동열사 희생자 추모페이지

교육청과 학교관료들의 비민주적 관료주의에 저항하며 헌신

성기득

기일 2003년 12월 07일
당시 42세

약력

1988년 5월 순천대 국어교육과 ‘참교육 쟁취 및 무능교수퇴진을 위한 자주 민주 통일 교육 실천대회’ 투쟁위원장으로 9월말까지 113일간의 장기간 파업 농성
1989년 순천대학교 총학생회 부회장 역임
1989년 6월 전대협 산하 남대협 통일선봉대장
1989년 8월 총학생회 부회장 역임. ‘집시법 위반,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을 사유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공주교도소 등지에서 옥중 투쟁
1991년 3월 국어교육과에 복학, 사범대 동아리 ‘비봉문학회’조직
2000년 ‘전국 시국사건 관련 미임용자 임용추진위원회’ 결성회원 선진국장 역임
2001년 9월 ‘전국 시국사건 관련 미임용자 채용 특별법’에 의해 개금여중 교사로 발령

동지의 삶

동지는 1986년 전남 국립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여 활발한 교육투쟁을 벌인다. 1988년 5월에는 국어교육과 ‘참교육 쟁취 및 무능 교수퇴진을 위한 자주 민주 통일 교육 실천대회’ 투쟁위원장으로 113일 간의 파업농성을 하고, 11월에는 ‘교육학부 쟁취 및 발령 적체 해소’를 위한 토쟁에도 참여한다. 1998년에는 순천대 총학생회 부학생회장을 역임하며 ‘전교조 결성 운동’, ‘광주민중항쟁 계승 투쟁’, 통일선봉대장 등의 활동을 벌이다 약 2년 동안 옥중투쟁을 한다. 2001년 9월 마흔 한 살의 늦은 나이에 국어 교사가 된 동지는 처음이자 마지막 학교가 된 부산시 진구 개금여중을 뒤로 하고 양산 솥발산 공원묘지에 묻혔다. 2002년 11월 20일 동지가 한 학생의 성적처리 문제로 교육청에 질의를 하였다. 사고가 있던 11월 28일, 교감이 화해자리를 마련한다는 회식 자리에서 2학년 부장교사가 동지에게 거친 말을 계속 했고, 결국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동지는 구토 증세를 보이며 몸 상태가 현저히 악화된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 중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손상, 뇌 탈출증, 심 정지’로 사망했다.

묘역

양산 솥발산공원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