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기일 2018년 12월 10일
당시 25세
![](https://memorial.kctu.org/files/thumbnails/377/180x230.crop.jpg?20230831155948)
약력
2018년 9월 17일 한국발전기술 입사.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트랜스퍼타워에 배치
2018년 11월 28일 “문재인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피켓팅 참여
2018년 12월 10일 혼자 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
2018년 12월 11일 03시23분, 컨베이어벨트에서 발견
2019년 2월 9일 김용균이 떠난지 62일째, 청년비정규직 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동지의 삶
대학을 졸업한 김용균은 한국전력공사 입사를 준비했다. 경력을 쌓기 위해 2018년 9월 17일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계약직 노동자로 입사했다. 그리고 태안화력발전소 연료운영팀에 배치돼 석탄설비 운전 업무를 맡았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시커먼 석탄가루가 눈발 날리듯 날리고, 이로 인해 작업장은 코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사고가 일어나 던 날 입사 3개월밖에 안 된 김용균은 홀로 밤샘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정비업무의 민영화-외주화 정책으로 인해 위험이 더욱 확대되는 방향으로 구조화되며, 안전보건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일상화되는 노동정책의 문제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다음 날 새벽 시신이 발견되자, ‘청년비정규직故김용균시민대책위’를 구성하고, 한국서부발전을 고발했다. 이후 시민대책위는 빈소를 마련하고 62일간의 투쟁을 벌이면서 ‘위험의 외주화 근절, 재발방지 대책수립,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럼,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등 내세우고 단식투쟁 등 다양한 투쟁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한국서부발전 측의 보상과 사과를 받아 냈으며, 국회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김용균법’을 제정했다.
묘역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