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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노동열사 희생자 추모페이지

노나메기 벗나래(세상)혁명가, 민중사상가, 통일운동가, 예술가, 노동자민중의 스승

백기완

기일 2021년 02월 15일
당시 88세

약력

1964년 ~ 한일협정 반대운동 참여, 백범사상연구소 설립
1974년 ~ 유신반대 100만인 선언운동, ‘YMCA 위장결혼 사건’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 사건으로 옥고
1985년 ~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1987년, 1992년 민중후보로 대선출마
수많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 현장에서 선봉자 역할
2021년 2월 15일 운명

동지의 삶

초등학교 이외의 정규교육과정은 거치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공부하며, 일찍이 통일문제에 눈을 떠서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1967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하여 백범 사상의 연구와 보급에 힘썼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청원운동을 펼치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1975년에는 양일동, 김동길과 함께 장준하 장례식을 주관하였으며, 1979년에 YM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구속되어, 1981년에 특사로 석방되었고,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을 지냈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 민중후보로 출마하여 양김씨의 후보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하였고, 1992년 독자 민중후보로 추대를 받아 출마하였으나, 낙선한 뒤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났다. 이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에 전력을 다하며, 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 초대회장, 전노협 고문, 장준하선생 암살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 민족문화대학설립위원회 대표, 한양대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장산곶매 이야기』,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하였고, 계간잡지 《노나메기》지를 창간하였다.

묘역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