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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노동열사 희생자 추모페이지

덕진양행 노조탄압에 항거

김윤기

기일 1989년 04월 03일
당시 25세

약력

1983년 3월 국민대학교 무역학과 입학
1986년 5월 5·3인천 투쟁에 참가하여 구속되어 1년형을 선고받음
1988년 7월 덕진양행 입사
1988년 11월 덕진양행 노조결성, 위원장으로 선출됨
1989년 4월 3일 협상 결렬에 항의, 분신하여 운명

동지의 삶

국민대에 입학해 동아리 ‘청문회’에서 활동하며 사회민주화와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던 동지는 1986년 5·3 인천투쟁에 참가해 실형 1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 후 노동자와 삶을 함께 하고자 1988년 7월 덕진양행에 입사했다. 동지는 동료들과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11월 29일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선출되어 회사 측과 교섭에 들어갔다. 1월 중순 사측은 공장이전이라는 노조탄압의 칼을 휘두름으로써 민주노조의 생명을 끊어놓으려 하였다. 이에 덕진양행 노조는 동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경비절감 한다더니 땅값 비싼 서울 이전이냐. 서울 이전 철회하라!” 외치며 2월 16일부터 파업농성에 돌입하였다. 마지막 협상마저도 결렬되자 이에 격분한 동지는 자신의 몸에 신나를 끼얹고 항의하던 중 불이 붙어 병원으로 이송 중 운명하였다. 이후 동지는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국민대에서는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

묘역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