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산재노동자들과 함께 하겠다
최완용기일 1989년 04월 09일
당시 25세
약력
1983년 인천에서 공장 생활
1987년 산업재활원 방문, 환자들을 위로하면서 고통당하고 있는 재해자들과 삶을 같이함
1989년 계양구 박촌동 소재 흥업사에서 손가락 4개가 짤리는 산업재해를 당함
1989년 4월 9일 부평 철마산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열망하며 분신하여 운명
동지의 삶
동지는 인천지역 공장에서 일하며, 저임금과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그런 중에도 휴일이면 산업재활원을 방문하여, 고통당하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는 봉사활동도 하였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였다. 1989년 3월 1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여 안전장치도 없는 프레스에서 작업하다 오른손이 잘렸다. 동지는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병원 산업재활원에서 재활 기술을 배우기를 희망하였으나, 회사와 병원의 거부로 그것마저 이루지 못하였다. 사고를 당한 지 한달 여 지나, 동지는 “내가 죽으면 중앙병원 영안실에 안치해 달라”며, 죽어서도 산재노동자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유서를 남기고, 산재 노동자의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온몸에 불을 붙여 산화해 갔다. 동지는 산재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영리에만 치우쳐 노동자의 생명과 생존권을 말살하는 자본가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숨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