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노협이다
박창수기일 1991년 05월 06일
당시 33세
약력
1981년 7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입사
1990년 7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당선, 부총연 부의장 역임
1991년 2월 대기업 노조연대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구속, 서울구치소 수감
1991년 5월 4일 의문의 상처를 입고 안양병원에 입원
1991년 5월 6일 병원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한 채 발견
동지의 삶
동지는 1981년 8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배관공으로 입사한 후 1986년 8월부터 어용노조 퇴진 및 위원장 직선제 쟁취를 위해 노조 개혁과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동지는 1990년 7월 노조위원장 선거에 당선되었고, 부산노련 부의장 겸 전노협 중앙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1년 2월 10일 제3자 개입금지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수감 중 부상을 입고 안양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5월 6일 새벽 4시 45분 안양병원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 신원미상의 청년이 병실을 방문한 사실과 안기부 직원이 계속해서 동지와의 통화를 부탁해온 점으로 인해 안기부의 살해라는 의혹이 두터웠다. 정부는 병원에 백골단을 투입해 영안실 벽을 깨부수고 강제로 시신을 탈취해 강제부검을 실시하였으며 부검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 동지와 한진중공업 노조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전노협, 대기업연대회의 탈퇴 및 와해 활동이 안기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이 조사과정에서 밝혀졌으나, 국정원의 자료공개 비협조와 은폐로 아직 진상규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묘역
양산 솥발산공원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