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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노동열사 희생자 추모페이지

광산쟁이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성완희

기일 1988년 07월 08일
당시 29세

약력

1974년 초등학교 졸업후 서울로 상경, 봉제공장에 취업
1986년 10월 태백시 철암동 강원탄광에 채탄후산부로 입사
1987년 8월 파업시 노동자 대표로 선출되어 파업을 승리로 이끔
1988년 2월 경비직으로 부당 전직 당했다가 투쟁으로 원직복귀
1988년 6월 21일 동료해고자 복직을 위해 시위에 돌입
1988년 6월 29일 노조사무실에서 5명이 단식농성중 어용노조 대의원 정대식 등의
각목 습격에 맞서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
1988년 7월 8일 원주 기독병원에서 운명

동지의 삶

동지는 1987년 12월과 1988년 2월 두 차례나 부당해고를 당했으나 동지와 동료들의 헌신적인 투쟁을 통해 복직을 쟁취한 바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복직투쟁을 도와준 혐의로 동료가 해고되자 자신의 일보다 더 열심히 복직투쟁을 전개하여, 결국 노동부와 지방 노동위원회에서도 복직판정과 복직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사측이 이를 무시하여, 해고된 동료는 단식에 돌입하였고, 동지도 동료들과 함께 복직투쟁에 참여하였다. 동료의 생명을 건 단식 8일째인 6월 29일 “이대로 두면 죽는다”며 동지는 동료 5명과 함께 휘발유와 석유를 들고 노조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폐쇄하고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구사대원들이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난입하였고, 동지는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불을 그었다. 동지는 화염에 휩싸인 채 “부당해고 철회하라”, “인권탄압 중지하라”, “광산쟁이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가 노조 앞 큰길에 쓰러졌다. 동지는 10일간 죽음과 싸우다 7월 8일 운명하였다.

묘역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