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역 해고노동자 복직 투쟁에 헌신
최웅기일 1993년 10월 26일
당시 29세
약력
1986년 노동운동을 위해 인천으로 이전
1987년 경동산업 입사, 풍물패 활동 및 디딤돌 소모임 활동
1989년 경동산업 해고, 인해협에서 간사
1990년 인천민중교육연구소 실무 간사
1992년 인천민중연합 노동자위원회 활동
1993년 인천민중연합 부설 우리노동상담실 노사부장
1993년 10월 26일 신혼여행 중 사고로 운명
동지의 삶
동지는 1983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민속극연구회 ‘탈패’의 일원으로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 맞서면서 그의 일생을 운동에 투신했다. 1984년 영등포 노동절 가두투쟁으로 붙잡히는 등 대학시절 내내 적극적인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다. 1986년 말 군 입대를 거부하고 역사의 진보에 대한 희망을 노동자계급에서 발견한 동지는 인천으로 내려갔다. 1987년 경동산업에 입사, 풍물패 활동과 민주파 모임인 ‘디딤돌’의 열성적인 회원으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하던 동지는 회사 측의 탄압으로 1989년 봄, 결국 해고되고 말았다. 이후 사측은 디딤돌과 노동조합을 탄압하여, 김종하 강현중 두 명의 동지가 분신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동지는 1990년 초까지 인천지역해고자협의회 실무자로 근무하며 복직투쟁을 전개했고, 1990년 초 인천민중교육연구소와 1992년 인천민중연합 활동과 병역징집 거부투쟁을 계속했다. 이후 결혼식을 올리며 노동자의 삶을 결의하던 동지는 신혼여행에서 불의의 조난사고를 당하여 운명했다.
묘역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