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민주노총 노동열사 희생자 추모페이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투쟁역사의 산증인

이운남

기일 2012년 12월 22일
당시 41세

약력

1997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명호산업 입사
2001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모임 활동 시작
2003년 8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 발기인, 초대 조직부장
2003년 9월 노동조합 건설투쟁 과정에서 부당해고
2004년 2월 17일 박일수열사 분신 후 크레인 점거농성
경비대 폭력진압 후 곧바로 구속 (2004년 4월 9일 석방)
2005년 해고상태로 하청노조 조직부장 상근활동
경비대에 수없이 폭행당한 기억으로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상 보임
심각한 생활고로 택배기사 등 생계활동 시작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참가
2012년 민주택시 화진교통분회 활동. 현대자동차 불법철폐투쟁 연대
2012년 12월 22일 17시 20분경, 현대차비정규직 투쟁과정에서 사측 폭력소식과 한진중공업 최강서열사 자결소식을 들으며 매우 괴로워하다 자택에서 투신 자결

동지의 삶

동지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투쟁역사의 산증인이다. 극악무도한 탄압에도 차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 건설을 위해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박일수 열사의 뜻을 이루기 위해 크레인 점거 농성에 돌입, 경비대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 안았다. 노조건설 투쟁과 점거 농성으로 인해 2003년 9월에 해고, 2004년에 구속된다. 그에 따르는 생활고에 동지는 불가피하게 택시노동자로서 삶을 살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 임에도 불구하고 동지는 “비정규직 철폐!”, “노동 기본권 쟁취!”를 외치며 희망 버스 연대와 화진 교통 분회 활동, 지속적인 조직부장 활동 등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현대차 비정규직의 처절한 투쟁과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죽음은 도사리고 있던 병마를 다시 불러냈다. “왜 우리는 당해야만 하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지는 최강서 열사의 죽음과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다는 고민 안에서 자택에서 스스로 투신 자결하였다.

묘역

양산 솥발산공원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