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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노동열사 희생자 추모페이지

직업병 투쟁의 불씨를 지피고 노동자 건강권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되다

김봉환

기일 1991년 01월 05일
당시 53세

약력

1977년 12월 22일 원진레이온 입사(원액2과 근무)
1990년 9월 퇴사후 1차 쓰러져 말을 더듬기 시작
1990년 11월26일 사당의원에서 이황화탄소 중독 의증 및 고혈압으로 진단받음
1990년 11월27일 노동부와 회사측 요양신청 거부
1991년 1월 5일 노동부로부터 요양신청서 접수 통보 받음
1991년 1월 5일 오후 1시경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밤 10시 30분경에 운명

동지의 삶

동지는 1977년 원진에 입사하여 원액2과에서 일하던 중 두통과 손발 저림 등 이황화탄소 중독 초기 증상을 얻어 1983년에 퇴사했다. 그는 말을 더듬는 증상이 악화되어 이황화탄소중독 의증 및 고혈압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렇지만 노동부는 유해부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요양을 불승인했다.
동지는 1991년 1월 5일 자신의 외동딸 고등학교 입학금을 접수하고 집으로 돌아온 직후 사망했다
동지의 죽음으로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노동자협의회’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회사와 노동부에 맞서 수차례의 집회와 항의를 통해, 정부의 직업병 은폐를 규탄하고 산재추방 여론을 대대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연대활동으로 발전했다. 마침내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 등 직접 동참하는 성과를 얻었다. 또한 정부로 하여금 ‘직업병 예방 6개년 계획’을 수립하게 만들었다. 1991년 추운 겨울에 돌아가신 동지의 장례는 신록이 짙어가는 5월 21일에야 치룰 수 있었다.

묘역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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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봉환동지는 죽었지만 (주)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주)원진레이온의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회사측은 노동자의 목숨을 돈벌이의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지금은 당신들이 세상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고 보라. 온 지역주민들에게 독가스를 먹이고, 노동자들을 직업병으로 죽이는 직업병 제조공장을 계속하는 한, 우리는 온 국민의 단결된 힘으로 산업재해, 직업병 없는 세상을 위해 싸워나갈 것이다”고…
오늘의 이 억울한 죽음을 내일의 힘찬 투쟁으로 승화시킵시다.’

- 원진레이온 직업병 노동자 고 김봉환동지 장례식 자료집 중에서 -